이 책의 특징
직장인들은 일을 마치고 책을 펼치는 순간, 그냥 눈이 감긴다.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. 글을 읽는 것 자체가 노동이고 사치다. 그냥 SNS 글처럼 편하게 보시라고, 이 책의 편집을 최대한 간격을 띄웠다. 눈길 가는 대로 물 흐르듯이 따라오길 바란다.
계약직으로 하루 10시간 일하면서, 2015년 1월. 직장 앞 독서실 잡고 3월부터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.
2016년 3월 친 서울시 9급 공무원 공채시험에 합격했다. 합격 후 신입 공무원 연수 이틀 전에 다니던 직장에 사표 내고 나왔다. 직장 그만두지 않고 공시 공부하느라, 1년간 주말은 밤을 새웠다.
습관이 무섭다. 합격하고 나서도 주말에는 잠이 안 와서, 한국사 전한길샘 네이버카페에 합격수기를 썼다.
현실 직장인 합격수기였는지라, 댓글이 계속 달리고, 쪽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왔다.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메일이 오고 있다. 간절히 합격을 원하며 공시를 준비하는 직장인들이다.
● 막노동하시는 분
● 계약직 직장인 ― 중소기업, 대학교, 공공기관 계약직
● 3교대로 일하시는 분
●공익 사회복무요원
● 주부, 백일, 돌 된 아기의 엄마
● 직장에서 잘나가지만 언제 잘릴지 모르는 가장
●전업 수험생
●공시 3~5년 장수생들 ― 직장이나 알바와 공시를 왔다 갔다 하는
1년간은 최선을 다해 일일이 답변을 드렸다. 1년이 지나고도 쪽지와 메일이 이어졌지만, 서울시 발령 후 일하고 적응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,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했다. 나중엔 답변을 할 힘이 더 이상 남아 있질 않았다.
당시 공부했던 기억은, 음~ 떠올리는 것조차 고통스럽다. 나는 강을 건넜고, 배를 떠나보냈고, 점차 잊혀갔다. 2016 합격 후, 이 이야기를 2년 넘게 묻어놓았던 이유다. 답변 못 한 쪽지, 메일들은 찝찝하게 내 맘속을 맴돌았다.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이 다 되어 가니, 어느 순간, 여전히 쪽지는 계속 오는데, ‘아! 나에게 이런 시절이 있었지.’내가 어떻게 공부했었지?’기억이 가물가물해져 간다. 치매도 아닌데…. 다시 꾸역꾸역 한길샘 카페에 들어가 본다. 질문 댓글이 계속 달리고 있다.
이 책은, 나에게 용기 내어 질문해 준, 그 한분 한분에 대한 답변이다.
이렇게 이렇게 하면 되는데 왜 포기하지? 안타까웠다. 그분들의 절박함, 그냥 묻고 지나쳐버릴 수도 없다. 하지만 고생했던 그 기억들을 다시 떠올리기는 싫다. 내가 타고 왔던 배는 기억에서 저만치 사라져 가고 있다.
그 배가 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기억의 배를 소환하기로, 한번에 다 쏟아붓고 완전히 떠나보내기로, 그렇게 잊기 전에 펜을 들었다. 그러면서 난, 내가 고생한 기억은 잊어버리기로 했다.
그냥 먼저 이 터널을 통과한 친구로, 선배로, 잔소리 많은 언니, 누나의 이야기로 편하게 물 흐르듯 봐라.
혹여나 내 이야기가 절박한 현실을 살아내고 있는, 단 한 사람에게라도 도움이 된다면 말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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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상희 저
사피엔스고시
20181110